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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 2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18-02-02 조회수 5293
파일첨부 monthlyP_2018013018240800.jpg

2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김면(金沔) 의병장

Righteous Army Commander Kim Myeon

(1541. 4. 2 ~ 1593. 3. 11)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지해(志海), 호는 송암(松菴)이다. 1541년 경상도 고령 개진면(開津面) 양전리(量田里)에서 아버지 김세문(金世文)과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면은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과거를 준비하지 않고, 후생(後生)을 가르치는 것을 업(業)으로 삼았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에서 일가와 향민 7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 거창(居昌)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수 일 만에 2,000여 명의 대부대를 구성했다. 6월 9일 왜군이 고령의 개산포(開山浦)를 침입하자 거창에 머물던 김면 의병장은 군사를 이끌고 고령으로 들어가 이들을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즈음 경상도 지역의 왜적은 성주와 개령(開寧)에 주둔하고 낙동강을 주요 보급로 및 교통로로 이용하면서 호남으로 들어가고자 하였다. 김면 의병군은 6월 18일경 무계(茂溪) 인근의 낙동강을 통과하던 왜선 두 척을 공격하여 포획하였다. 그 공로로 6월에 합천(陜川) 군수에 임명되었다. 김면 의병군은 왜군에게 큰 타격을 입혀 경상우도 지역을 보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경상도를 통해 전라도로 침공하려던 왜군의 작전 계획을 좌절시켰다.



전라도로 진출이 어려워진 왜군은 지례(知禮)로 후퇴하여 그곳의 사창(社倉)과 객사(客舍), 그리고 관아를 점거하고 있었다. 김면 의병장은 8월 1일 사창을 일시에 포위하고 나무를 쌓아 불을 질러 왜군을 태워 죽이고 객사와 관아에 있던 왜군들은 화살을 쏘아서 죽였다. 지례를 수복한 이후 김면 의병장은 정인홍과 함께 성주성의 왜군을 공격하였으나 왜적의 기습으로 성주 공략에 실패하였다. 이후 9월 중순 김면 의병장은 지례의 사랑암(沙郞巖)에 주둔해 있던 왜군을 진주목사 김시민과 합세하여 다수의 왜군을 섬멸하였으나 개령에 주둔한 왜군의 역습으로 철수하였다. 김면 의병장은 11월 선조로부터 ‘의병대장(義兵大將)’의 칭호를 받아, 경상ㆍ전라ㆍ충청 3도의 의병진(義兵陣)을 서로 연합하여 개령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을 참획할 수 있었다.



김면 의병장은 1593년 1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에 임명된 이후 3도의 의병과 함께 금산(金山)으로 이동하여 선산(善山)의 왜군을 토벌할 연합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은 해 3월 갑자기 병을 얻어 53세로 숨을 거두었다. 1593년 병조판서겸지의금부사(兵曹判書兼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1607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가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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