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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07-11-01 조회수 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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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손 장군(? ~ 1251)은 평장사 김태서의 아들로 태어나 성품이 온화하고 관대하며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대담하면서도 지략이 있었다.

1231(고종 18)년 정주(靜州 : 現 평안북도 의주군) 분도장군(分道將軍)이 되었을 때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했다. 몽고군이 압록강을 건너 개전 40여일 만에 함신진·용주·철주 등 요충지를 공략하고 정주성에 이르자 김경손 장군은 결사대 12명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 분전 격퇴하였다.

1231년 9월 3일 몽고의 대병력이 귀주성으로 밀어닥치자 김경손 장군은 기습으로 전열을 교란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결사대와 함께 성 밖으로 나아가 선두에 있던 적장을 쏘아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4~5차례에 걸쳐 적진을 타격하자 몽고군 진영에 혼란이 일어났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성내의 고려군이 일제히 성 밖으로 달려 나와 공격하자 몽고군은 그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이후에도 서북지방의 군사적 요충지인 귀주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몽고군은 4개월에 걸쳐 끊임없이 공격해 왔으나 김경손 장군과 고려군은 불굴의 항쟁으로 몽고군의 공략을 분쇄했다. 70에 가까운 몽고의 한 장수가 ‘내가 소년시절부터 수십 년 간 전투에 참전했지만 이처럼 맹공을 받고도 무너지지 않은 경우는 본적이 없다’고 감탄했을 만큼 고려군은 용맹했다.

김경손 장군은 몽고군을 물리친 전공으로 대장군으로 승진하였으며 1237년(고종24) 전라도지휘사로 있을 때는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진압하여 그 공으로 추밀원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1249년, 장군의 명망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꺼린 실권자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로 유배당하였고 2년 후인 1251년, 최항이 정적을 제거할 때 함께 억울한 죽임을 당하자 사람들이 모두 통분하고 애석하게 여겼다.

이달 8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관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 장군의 헌양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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