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참여마당
  • 게시판
제목 박세환 회장 국방일보 특별기고
작성자 신동규 등록일 2014-02-12 조회수 1320
파일첨부
일본 총리가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박세환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
2014년 2월 12일자 지면 12


 역사는 정의의 편인가? 강자의 편인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문구가 있다. “정의 없는 무력(武力)은 폭력이지만 무력(武力)없는 정의는 무력(無力)할 수밖에 없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830만 명의 군인이 회생됐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군인만 2700만 명이 회생됐다.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 지배했던 20세기의 역사는 주먹이 앞서는 무법천지였다. 폭력이 정의에 우선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 무법천지 뒷골목의 주역은 독일과 일본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970년 2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적대국이었던 폴란드를 방문했다. 그리고 나치 정권하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도 마다하면서 …. 이로써 폴란드와 독일의 진정한 화해가 시작됐다. 독일 국민에 대한 폴란드 국민들의 적대감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세계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독일인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음으로써 전 독일인이 다시 일어서게 됐다”고.

 요즘 일본 아베 총리의 망언과 망동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서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적이 없다.” “한국이 일본 영토 독도를 불법 점유하고 있으니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 제소하겠다.” “미국은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서는 안 된다.” 똑같이 뒷골목에서 못된 짓을 한 폭력배들의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이러한 행태에 대해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 1월 30일 프랑스에서는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이 열렸다.
일본이 한국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는 내용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들이 전시됐다. 일본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무려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모여 들었다. 관람객들은 16세 소녀까지 위안부로 끌고 가는 일본의 만행에 분노했다. 더욱 분노한 것은 이처럼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양심불량이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는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 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20세기가 폭력이 우선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정의가 우선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독도가 원래 자기 영토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한국 영토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청일전쟁 이후 일본 영토로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는 일본 영토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려면 조선시대 이종무 장군이 점령했던 대마도(對馬島)는 당연히 한국 땅이어야 하고, 청일전쟁 이후 빼앗아 간 센카쿠 열도는 당연히 중국에 내 줘야 할 것 아닌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궤변으로 70억 인류를 속일 수도 없다. 이제 역사는 강자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다.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시대의 변화를 일본만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른 체 외면하고 있다.

 중국 난징에서의 대학살과 731부대의 생체실험, 위안부 동원 등 나치의 독가스실 못지않은 만행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일본,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자멸뿐이다.

 우리의 대일정책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본과 말싸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럴 가치도 없다.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지구촌의 모든 인류와 함께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규탄해 나가야 한다. 일본 총리가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는 그날까지.

인쇄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