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 큰 파문을 낳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동안 병역거부자에 대해 적용해 온 처벌 조항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고, 종교적 신념에 기초하여 수십년 동안 행해 온 병여거부자들의 신념은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 상급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법원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현실망각한 충격
법원의 판결을 놓고 여기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간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집요하게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를 주장해온 것이 급기야 법원의 판결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옹호론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일체의 군사적 훈련과 집총 등 병역을 이행할 수 없다고 선언한 한 젊은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양심의 자유란 어떠한 현실이나 실정법상의 이유로도 재단될 수 없는 절대적 기본권'이라는 것, '종교적?정치적 신념과 여타의 양심을 이유로 한 거부와 반대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오늘날 민주국가의 기본덕목이며 열린 법치국가의 징표'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면서 징병제도가 있는 국가 중 25개국에서 대체복무제도를 통해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양심과 신념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방의 의무 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부과된 책무를 거부해도 좋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양심의 명령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면 누가 '최악의 경우 목숨을 걸고 싸워야할' 군대에 가려고 할 것인가.
'양심'이라는 것은 '자의적'이다. 자의적 판단은 자칫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구성원 각자가 나름대로의 잣대를 고집한다면 공동체는 더 이상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공동체의 구성원, 곧 각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무참히 짓밟힐 수도 있다. 따라서 공동체의 유지에는 자의적 개념인 '정의'나 '양심'이 아니라 '법'이라는 '합의된 룰'이 요구되는 것이다.
너나없이 양심을 빌미로 대체복무를 택한다면?
공동체는 그것에 속한 개인의 총합이다. 따라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곧 각 개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 옹호론이 주장하는 그 '개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개인의 양심이 소중하다면 그럴수록 공동체는 유지도어야 하고 공동체의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
이른바 대체복무제 주장은 병역이 아닌 다른 일로 사회에 기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대체복무는 물론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필요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 판단도 공동체가 할 때로 한한다. 방위산업체 근무로 병역의무를 대체하는 게 한 예다.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공동체가 요구하는 요건과 자격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원하는 누구나 대체복무가 가능해 너나없이 대체복무를 택하겠다고 나선다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특히 남과 북이 무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럴 우려가 높다.
그런 점에서 외국의 사례를 들면 대체복문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로서 대만이 대체복무를 시행하고 있다고 반박하지만, 대만의 경우 남아도는 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즉, 대체복무제가 공동체의 필요에의해서 도입되었다는 얘기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민정서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병역거부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 그걸 말해준다.
조남현 (자유시민연대 대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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