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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5 국외 전사적지 안보견학 수기
등록자 제주안보부장
등록일 2025-09-17 오후 12:51:10 조회수 174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그리움

임무명, 제주도회 청년단원

 

 이번 여름 제주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가 주관하는 백두산 안보 견학의 기회가 주어졌다. 일정표에 백두산 천지와 윤동주 생가 방문이 포함된 걸 본 순간 꼭 동행하리라 마음먹고, 사전 준비로 영화 동주를 찾아보았다.

 

 연변 공항이 폐쇄로 심양 공항을 경유하여 이도백하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 일찍 백두산 서파로 향했다.

일기 예보는 맑음!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백두산 공원 입구까지 전세버스로 이동하면서 밖을 보니, 백두산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산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백두산, 멀리 거대한 돌산들이 우뚝 서 있고, 주변 몇몇 봉오리들은 짙은 이끼들에 덮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백두산과 가까워질수록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향하던 여정 중,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 시나이산으로 갈 때의 마음이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백두산 공원 입구에서 셔틀버스로 환승하고 해발 1,900m까지 올라간 후 주차장에서 일행들과 점심을 먹었다. 속으로 제발 식사하지 말고 백두산으로 빨리 향해주세요.’라고 외쳤지만, 내색은 못하고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한 상태로 백두산 천지로 향하였다. 천지를 향해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는데 백두산 정상 위로 검은 먹구름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마음이 조급해져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는데 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아!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더니 백두산은 쉽게 천지를 보여주지 않으려다 보다. ‘천지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라는 초조함과 다급함이 몰려와 마음을 다스리려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 하느님이 허락한 만큼만 보여주세요. 허락하여 보여주는 것에 만족하고, 천지를 향하여 가는 한걸음, 한걸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세요.”

기도 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백두산 서파의 이름 모를 들꽃들(멀리서 이끼처럼 보였던 짙은 녹색은 들꽃들의 무리였다.)의 향연이 보였고, 푸릇푸릇하고 넓은 능선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모든 것을 다 품어줄 것 같은, 부모님의 마음처럼 넓고, 너그러움이 넘치는 백두산의 열린 모습이 보였다. 천지만 보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바라본 백두산은 내게 뜻밖의 선물을 쏟아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백두산 정상!

 여전히 구름이 천지를 휘두르고 있어 천지는 못보겠구나 체념하고 있었는데, 많은 인파 틈에서 살포시 천지가 보이고 구름이 걷혀가기 시작했다. 마치 전사가 되어 돌파하는 마음으로 인파를 뚫고 천지 바로 앞까지 성공!

 천지를 직접 목도한 한순간 하! 숨이 멎었다. 천지의 기운이 나의 심장을 강타하기 시작하였다. 천지에서 눈을 떨 수가 없었다. 천지는 사진보다 훨씬 푸르렀고,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중 일부에서는 빛에 반사되어 황금빛 피라미드가 되었다. 경이로움과 경외심으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천지를 보고 있노라니 중국 관광객들이 나보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아우성이다.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일행들과 다음 일정도 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산하였다.

 

 다음날 북파로 다시 백두산을 향했다. 기상이 악화되어 천지는 폐쇄되었고 같은 방향의 장백폭포는 개방되었다. 북파 경로에서 바라본 백두산은 서파의 모습과는 결이 아주 달랐다. 서파가 부드럽고 여성적이라면 북파에서 바라본 모습은 장엄하고 남성적이고 조금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멀리 병풍처럼 늘어선 봉우리 너머에 천지가 있을 것 같았다. 북파로도 천지를 알현하고픈 마음에 가이드에게 폐쇄 여부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폐쇄는 불변이었다.

 장백폭포로 향하는 길에 유황 냄새가 진동했고, 좀 더 올라가니 온천 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확실하게 백두산이 화산활동 중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백두산 북파 경로를 하산하고 다시 향한 장소는 용정!

 

 용정!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속 천애 고아가 된 서희가 모든 재산을 친척에게 빼앗긴 후 평사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은괴를 가지고 고향을 떠나 정착한 곳.

 평사리의 사람들이 서희를 따라 같이 이주한 곳. 월선과 용이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 조국을 찾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투신, 서희의 당차다 못해 야멸차 보이는 생존방식, 토지의 스토리들이 기억나면서 상념에 잠겨본다. 용정에 토지 문학관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비암산 일송정!

 비암산 위 소나무가 정자 모양이어서 일송정인데 항일운동가들이 그곳에서 비밀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영사관 측에서 일송정 소나무에 독극물을 뿌려 고사시켰는데 그 후 같은 자리에 여러 차례 소나무를 심었지만, 약물의 영향인지 새로 자라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송정 자리에 정자가 세워져 있고, 그곳에서 바라본 해란강은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조국을 잃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항일운동에 헌신한 선구자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들었던 가곡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 가슴을 후벼판다.

 

 다음 일정은 윤동주 생가 방문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인 동주 시인!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빵점인 내게도 울림을 주었던 윤동주 시들! 그래서 윤동주 생가 방문은 이번 견학에서 가장 기대한 곳이었다.

 20여 년 전에는 윤동주 후손들이 동주의 생가와 외삼촌이 설립한 교회를 관리했었는데 지금은 중국 당국이 관리한다고 한다. 시인의 외삼촌인 김약연은 1890년대 이북에서 150여 명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 명동촌에 정착하였다. 빈부 귀천이 없는 이상촌을 건설하고자 했으며, 학교와 교회를 세워 민족의 정체성과 항일정신을 함양하였다고 한다.

 명동촌이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된 것이다. 영화 동주에서 보여준 명동촌 공동체의 분위기는 여유 있고, 온기와 생기가 넘쳐났다. 명동촌에서의 유소년기를 지나면서 동주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시인의 정서가 형성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시구를 남겼고,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해방을 목전에 두고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의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별헤는 밤

 

 동주의 생가 견학 후 향한 곳은 도문의 두만강이었다.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 장소들을 알려줬다. 푸른 산(청산)을 이용한 전투여서 청산리 전투라고 불렸다고 한다. 창밖 청산은 한없이 평화로운데, 그 시절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던 이곳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들 갔을까? 산화한 선조들을 생각하니 숙연해지고 먹먹해졌다. 그분들의 헌신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분들의 후손들에게도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두만강에 도착!

 두만강은 푸른 물도 아니었고, 노 젓는 뱃사공도 볼 수 없었지만, 손에 닿을 듯 지척에 정막 속 북한 땅이 있었다. 이렇게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이구나. 금단의 구역이 되어버린 곳, 언제부터 통일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부디 교류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심양, 용정, 연길, 청산, 두만강, 발길 닿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새롭고 한없이 소중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항일운동가들, 그리고 그 가족들, 혹은 그 시대를 살아내고 버티어 낸 선조들!

 동시에 제주에서도 일제와 4·3을 경험하면서 속솜하라(‘잠잠하다의 제주도 방언)며 숨죽여 견디어 내준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삼촌들!

 그들의 희생 위에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나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스토리를 물려줄 수 있을까?

 

 이번 보름은 개기 월식이고 블러드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붉은 달빛이 한라의 백록담과 백두의 천지를 동시에 비추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기회를 마련해주신 제주도재향군인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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