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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의 6·25 전쟁영웅-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5-08-06 조회수 5883
파일첨부 고종석~1.JPG

“수류탄이다! 모두 엎드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적의 방망이 수류탄이 호에 떨어지자 고종선 분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불과 19세의 어린 나이에 몸으로 수류탄을 막아내 분대원의 생명을 구하고 전사한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용맹함과 희생정신을 겸비한 진정한 군인





경기도 개풍 출신의 고종석 일등병조는 1949년 개성상업학교 졸업 후 그해 해병 2기생으로 군에 입대하여 김성은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이후 지리산과 제주도 일대의 공비 토벌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경남 진동리 지역에서 북한군 제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하여 적의 침공을 저지함으로써 진동리-마산 간 보급로를 타개하고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하며 군인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통영 장평리 해안 한국군 최초 단독 상륙작전에 참가하다





1950년 8월 16일 낙동강 방어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한군이 전략요충지인 마산과 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해 통영에 침입하자 손원일 중장은 해병대에 출동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김성은 부대는 상륙작전을 감행하였고, 고종석 일등병조(당시에는 삼등병조)는 김성은 부대 예하 제1중대 1소대 분대장으로서 통영 장평리 해안에서 작전에 임했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김성은 부대는 상륙 작전 이틀 만에 통영을 탈환하여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 통영 상륙작전 상황도(사진출처: 해병대 통영 상륙작전 기념관)



 



 



 



이후에도 북한군은 통영 지역 재진입을 위해 끊임없이 역습을 감행하여 집요한 공격을 퍼부어왔습니다. 유일한 공격로인 원문고개를 공격하는 북한군과 이를 방어하는 국군. 이들은 치열한 백병전을 펼쳤고, 혈전은 장장 4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해병대는 재차 북한군의 반격을 받으면서도 혼신의 힘을 당해 진지를 지켰고, 고종석 분대장은 부상에도 개의치 않고 직접 전투에 임해 적 3명을 무찌르고 도망치는 적 6명을 사살하는 등 분전을 거듭하였습니다.



 



후송마저 거부한 채 진지를 강화하며 방어태세를 굳히고 있었던 고종석 분대장은 적의 수류탄이 호에 떨어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엎드려!”라는 외침과 함께 수류탄이 떨어지는 곳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고, 그로 인해 분대원들은 누구 하나 다친 사람 없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분대장의 희생을 목격한 분대원들은 분노로 가득 차 일제히 육박전을 감행하여 적을 물리쳤고, 적의 거듭되는 공격에도 통영을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의 투혼을 발휘하여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주었던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 희생정신의 귀감이 된 고인의 공훈을 기려 정부에서는 대통령 특명에 의해 2계급 특진인 일등병조로 추서했습니다.



 



 





 



▲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 [출처 : doopedia]



 



 



눈앞에 놓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여 분대원들을 지켜냈던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으로 분대원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진지를 지켜야한다는 투쟁심을 불태울 수 있었고, 전 장병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번 8월에는 젊은 나이에도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했던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의 희생정신을 가슴 속에 깊이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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