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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년 6월의 전쟁영웅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7-03 조회수 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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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6∙25 전쟁영웅은 내평지서 전투에서 북한군의 진군을 저지하다 산화한 노종해 경감입니다. 노종해 경감은 춘천을 점령하려고 했던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고 국군 6사단의 주저항선 구축에 기여했던 1950년 6월 26일 내평지서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1950년 6월 북한군 1군단은 서울을 점령하고, 2군단으로 하여금 춘천 – 홍천 – 수원으로 내려와 국군의 퇴로를 차단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북한군 1군단은 서울로 진격하여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2군단은 춘천으로 진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계획은 춘천진격이 늦어지면서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었던 전투가 바로 춘천 내평지서 전투입니다.

당시 화천에서 춘천으로 가는 46번 도로 내평리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내평지서는 춘천시내로 진입하려면 반드시 통화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서울을 3일만에 점령했던 북한군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내평지서를 뚫고 지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내평지서에는 노종해 경위를 포함 12명의 경찰관과 대한청년단 단원 3명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은 작전에 따라 내평지서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그곳을 통화할 것이라는 북한의 예측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전투 당시 통신마저 끊겨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지만, 내평지서의 노종해 경위를 포함한 15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1만 명이 넘는 북한군 2사단과 1시간 이상 치열한 교전을 펼쳤기 때문이죠. 북한군은 결국 82밀리 박격포를 대거 동원해서 내평지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든 다음에야 그곳을 점령 할 수 있었습니다.


노종해 지사장을 비롯한 12명이 산화하였는데요.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북한군의 진격을 1시간 가량 지연시켰고 그 시간 동안 국군 제6사단은 주저항선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15명의 경찰관과 대한청년단들이 북한군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북한군은 계획대로 춘천을 함락해 초기 작전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내평지서 전투가 없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올해는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현재 노종해 경감이 목숨을 던져가며 싸웠던 내평지서의 자리는 소양호 아래로 수몰 되어서 흔적을 찾기 어려운데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임했던 이들의 흔적을 우리 가슴속에 남기는 것은 어떨까요? 15명의 인원으로 1만 명이 넘는 북한군에 대응하여 1시간 가량이나 싸웠던 내평지서 전투의 강인한 애국정신을 가슴 속에 새길 수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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