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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2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5-04-10 조회수 1066
파일첨부 monthlyP_2015013013243523.jpg

2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임병찬 의병장(林炳瓚 義兵將)

Righteous Army Commander Im Byeong-chan

(1851. 2. 5 ∼ 1916. 5. 23)





한말 항일의병장으로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1851년(철종 2) 2월 5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 상평리 남산 마을에서 아버지 남곡(南谷) 임용래(林榕來)와 어머니 송악 왕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으며 대단히 명석하고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다. 임병찬은 본인의 명석함과 향리 가문을 배경으로 17세에 옥구형방(沃溝刑房)이 되었다. 이후 옥구예방(沃溝禮房)을 거쳐, 22세 때 옥구호장(沃溝戶長)이 되었다.

1888년(고종 25) 호남지방에 대흉년이 들었을 때 진휼의 공을 인정받아 1889년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의 직첩을 받았으며, 이어 낙안군수(樂安郡守) 겸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使)로 임명되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무남영우영관(武南營右領官)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2월 면암 최익현(崔益鉉)과 더불어 구체적인 의거계획을 수립했다. 그는 각 도ㆍ군에 통문(通文)ㆍ군율(軍律) 등을 발송하는 등 군사모집ㆍ군량 및 병사훈련의 책임을 맡았으며, 기우만(奇宇萬)ㆍ이항선(李恒善)ㆍ장제세(張濟世) 등 호남지역의 유림들과 연락하면서 의거에 관한 방책을 강구했다.

4월 13일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대규모 의병을 일으켜 홍주의병장 민종식(閔宗植)과 서로 연락하면서 태인ㆍ정읍ㆍ순창ㆍ곡성 등지를 습격하여 관곡(官穀)을 취해 군량으로 삼고 의병 진용을 정비해갔다. 그러나 6월 12일 순창전투에서 일본군과 격전중 최익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후 2년형을 선고받고 쓰시마섬(對馬島)으로 유배되었다가, 1907년 1월 귀국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은거하면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도모하던 중, 1912년 고종의 밀지를 받고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전라남도 순무대장(巡撫大將)에 임명되었다. 이에 각지에 격문을 발송하고 의병조직을 확대ㆍ강화했다. 그해 12월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 순무대장에 임명되었다. 1913년 1월 아들 임응철(林應喆)을 서울로 보내 이인순(李寅淳)ㆍ곽한일(郭漢一)ㆍ전용규(田瑢圭) 등과 협의케 하는 한편 호남지방의 유생 임태흥(林泰興)ㆍ임창현(林昌鉉)ㆍ김덕장(金德長) 등과 같이 전라남북도 조직 정비에 착수했다. 1913년 2월 전라남북도 순무총장 겸 사령장관에 임명되어 호남지방의 조직을 완료하고, 독립의군부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1914년 2월 서울로 올라와서 이명상(李明翔)ㆍ이인순(李寅淳) 등과 협의하여 독립의군부의 편제를 재정비했다.



한편 일본의 내각총리대신과 총독을 비롯하여 모든 일제 관헌들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제출하여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외국에 대해서도 일제의 통치에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었다. 그리하여 국민 대중에게 국권회복의 의기를 일으켜서 일시에 일제를 구축하는 항일의병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동지 김창식(金昌植)이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고문 끝에 독립의군부 조직을 자백함으로써, 독립의군부의 국권회복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많은 간부와 동지들이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자 경무총감과 면담하여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통박하고 국권반환 및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했으며, 일본의 한국독립 보장만이 동양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했다. 6월 1일 재차 총독과 총리대신에게 서한을 보내 면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다가 체포되었으며, 옥중에서 3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했다. 6월 13일 일제에 의해 거문도로 유배되어 안타깝게도 1916년 5월 그곳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신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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