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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8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8-29 조회수 5313
파일첨부 monthlyP_2016072715241524.jpg

8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이인영 의병장(李麟榮 義兵將)

Righteous Army Commander Lee In-yeong

(1867 ∼ 1909)



한말 항일의병장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공진(公振), 호는 중남(中南)이다. 1867년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북면에서 아버지 이현상(李顯商)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대단히 명석하고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으며 이른 나이부터 유학을 공부했다. 일찍이 향교를 운영하는 대성전(大成殿)의 재임(齋任)을 지냈으며, 이것은 그가 평생 역임한 유일한 벼슬이었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인석(柳麟錫)ㆍ이강년(李康年)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유인석의 제천전투에 참여했다. 다음해 고종의 선유(宣諭)로 의병을 해산하고 귀향한 뒤 경상북도 문경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농업에 종사했다.

1907년(고종 44)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각지에서 의병이 재기하고 일부 해산군인이 참여하는 가운데, 원주에서 기의한 이은찬(李殷瓚) 등이 의병 500명과 함께 찾아와서 총대장으로 추대하자 승낙했다. 그 후 원주로 가서 의병원수부(義兵元帥府)를 설치하고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에 오른 뒤 각지의 의병을 소집하자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한편 관동창의대장 이인영의 이름으로 서울의 각국 영사관에 의병전쟁의 합법성을 설명하고 서울 진격을 선언하는 통문을 발송하였다. 또한 횡성ㆍ지평ㆍ춘천 등지를 옮겨가며 의병 규합에 노력하고,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각 도에 격문을 보내 경기도 양주(楊州)로 집결할 것을 촉구하자, 11월에는 각 도의 의병장과 약 1만 명의 의병이 집결했다. 이렇게 하여 연합 의병체로서 13도창의대가 형성되어, 13도창의대장에 추대되었다.

13도창의대는 1907년 12월 양주에서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을사조약을 무효로 만들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각 도의 대장에게 정한 날짜에 동대문 밖으로 진군하도록 명령하고 직접 2,000명을 이끌고 동대문 밖에 진주하여 각 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각 도의 의병들이 정한 기일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았고, 특히 기밀을 탐지한 일본군이 먼저 공격해옴에 따라 할 수 없이 후퇴하여 남하하던 중 여주에서 일본군과 싸워 패했다. 이때 부친 사망의 부고를 듣고 급히 문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상주(尙州)에서 은거하다가 충청북도 황간(黃澗)으로 옮겨 거주하던 중, 1909년(순종 2) 일본 헌병에게 잡혀 경성감옥에서 사형당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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