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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8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
작성자 관라자 등록일 2016-08-29 조회수 899
파일첨부 625.jpg



1950년 9월 15일에 실행되었던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판세를 바꾼 획기적인 시도였는데요, 



이 작전은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되었을 만큼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그런데, 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배경에는 인천항 입구에 위치한 덕적도, 그리고 영흥도 탈환에 일조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의 활약이 있었답니다.



8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를 지금부터 만나보도록 할까요?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1930년 1월 28일,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1949년 1월 1월, 해군 신병 12기로 입대하였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곧바로 전장에 투입되어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해 8월, 북한군은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일반 주민을 학살했고, 또한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이곳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그대로 놔두면 해군의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물론, 당시 유엔군이 시도하려던 인천상륙작전 역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1950년 8월 15일, 유엔군은 아군이 상륙할 곳에 대한 정찰과 작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서해안 주요 도서를 탈환해 기점을 확보해야 한다고



 



극동해군사령부에 건의했습니다. 해군은 정보 수집과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함정의 승조원으로 구성된 상륙부대(육전대)를 편성했고,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하게 됩니다. 덕적도의 위치 상 인천항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만큼,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덕적도를



가장 먼저 확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해군 1함대에서 차출, 육전대 1소대 1분대장으로 참전하였고, 8월 18일에 덕적도를 향해 떠나게 됩니다.



아군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산악고지를 도주하던 북한군을 격파하고 덕적도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목표인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죠. 



 



8월 20일, 영흥도로 진입한 해군 육전대는 북한군에게 맹공격을 퍼부으며 국군 포로 4명을 구출했습니다.



북한군은 이미 덕적도를 빼앗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영흥도 자체가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점이었던 만큼,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를 비롯한 육전대는 끝까지 적을 몰아세웠습니다. 



 



추격 중 은신처를 발견한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는 부하들의 전진을 우선 정지시킨 후, 수류탄과 함께 엄호를 받으며 단독으로 은신처에 돌진했습니다.



첫 번째 수류탄을 성공적으로 투척하고, 두 번째 수류탄을 던지려던 순간,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의 가슴에 적의 탄환이 관통하였습니다. 분대장이던 박동



진 해군 일등병조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자 이삼재 부분대장이 이를 대신해 또다시 수류탄을 들고 돌진했고, 적의 집중사격으로 그마저 쓰러지자



전 분대원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했습니다. 이들의 공격으로 해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했고, 덕적도와 영흥도의 탈환은 9월 15일에 전개된 인천상륙작전



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에 기여했던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지금도 해군 유도탄고속함 15함(박동진함)에 이름이 붙을 만큼, 호국영웅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오늘도 우리는 기억해야 하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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