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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11월의 6.25 전쟁영웅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1-01 조회수 5457
파일첨부 20161101.png

이장원



(1928.2.11 - 1951.11.29)



상훈 : 충무무공훈장



 



현충원에는 조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에 증조부, 조부, 아버지, 아들, 무려 4대가 함께 한 가문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이장원 해병 중위의 가문인데요. 이러한 가풍에 따라, 이장원 해병 중위 역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던 6•25전쟁 중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2016년 11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이장원 해병 중위를 지금부터 만나볼까요?



 



 



 



“무적해병, 목숨을 다할 때까지 적의 해상보급로를 차단하라!”



 



이장원 해병 중위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해병사관후보생 5기로 입대합니다. 그 해 9월 소위로 입관한 후, 적에 대한 후방교란과 해안봉쇄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엄호의 임무를 맡게 되고, 이에 해병 독립 42중대 소속 황토도 파견소 대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당시의 황토도는 함경남도 영흥만 주변에 있는 아군의 해상봉쇄선상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북한 이곳을 장악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며, 기습 공격을 시도하곤 했는데요. 두 차례의 기습공격을 이장원 해병 중위의 부대가 막아내자 북한은 끝내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로 결심합니다.



 



1951년 11월 29일, 북한군은 1개 대대라는 대규모 병력으로 황토도를 향해 공격을 실시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자존심이 걸린 상륙작전으로, 점점 매서워지는 공격에 맞서 이장원 해병 중위와 부대원들은 치열하게 싸웠지만 무전기마저 파괴되어 아군의 지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되죠. 



 



그러나 이장원 해병 중위와 소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교전을 펼쳤고, 북한군은 결국 아군진지에 집중 포격을 실시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포격에 이장원 해병 중위와 그의 부하 3명은 전사하게 되었지만, 이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 분노한 이장원 해병 중위의 소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을 격멸하고 진지를 사수하게 됩니다. 3차례에 걸쳐 황토도를 점령하려 했던 북한군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고, 적들의 해상보급로가 차단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런 이장원 해병 중위를 전공을 인정하여,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이장원 해병 중위는 이후 증조부 이남규 선생과 조부 이충구, 아버지 이승복에 이어 4대가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숭고한 정신이 이어왔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11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이장원 해병 중위의 가문과 희생 정신을 우리는 더욱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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