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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2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2-03 조회수 919
파일첨부 monthlyP_2017012516241533.jpg

2월의 호국인물(護國人物)



김익상(金益相) 독립운동가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Kim Ik-sang

(1895. 6. 25 ~ 미상)



김익상의 본명은 김봉남(金鳳男)으로 1895년 6월 25일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舊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에서 3형제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추산(秋山)이다.

어린 시절 사숙(私塾)에서 한문을 수학했으며, 마포 소재 삼호보성소학교(三湖普成小學校)에 재학하였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중퇴하였다. 모친은 1907년 그의 나이 13세 때, 부친은 1915년 21세 때 사망하였다. 평양에서 철공(鐵工) 견습을 하였고, 경성 전기회사에서 전기 수선을 하였다. 1919년 25세 때 경성 교북동(現 종로구 독립문 사거리 인근) 광성연초공사(廣盛煙草公司)의 기계감독으로 근무하다가 1920년 5월 중국 봉천(奉天, 現 瀋陽) 지점에 기관수(機關手)로 발령났다.

봉천에 도착한 김익상은 흥미 없는 직업을 버리고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비행사가 되기 위해 연초를 횡령하여 비행학교가 있는 광둥(廣東)으로 갔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 군벌 간의 다툼으로 비행학교는 폐교 중이었다. 베이징(北京)으로 간 김익상은 그곳에서 조선독립운동을 목격하고 의열단장(義烈團長) 약산 김원봉(若山 金元鳳)을 만났다. 김원봉의 연설에 감동받은 김익상은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1년 김익상은 김원봉으로부터 총독 암살 밀령을 받고 국내로 들어왔다. 9월 12일 전기 수리공으로 변장하여 남산 조선총독부에 잠입하였고, 2층 비서과와 회계과장실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불발되었으나 회계과장실에 던진 폭탄은 폭발하였다. 혼란한 틈에 현장을 빠져나와 평양을 거쳐 9월 17일 무사히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며, 김원봉에게 의거 사실을 보고하였다.

1922년 2월 3일 상하이에서 김원봉을 만났을 때 3월 28일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가 상하이 부두인 황포탄(黃浦灘)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듣고 동지 오성륜(吳成崙), 이종암(李鍾巖, 이명 梁健浩)과 함께 다나카 암살 임무를 맡았다. 3월 28일 배를 타고 황포탄에 도착한 다나카를 향해 오성륜과 김익상이 두 차례 저격하였으나 오발로 서양여인에게 맞아 실패하였고, 폭탄도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3차로 이종암이 다나카가 타고 도주하는 자동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바로 터지지 않아 실패하였다. 오성륜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종암은 피신하였으며, 김익상은 피신 중 영국 경찰인 톰슨에게 총탄을 맞고 체포되었다. 이후 오성륜과 함께 상해 일본총영사관 감옥에 분리 수감되었으며, 4월 1일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에서 예심을 마쳤다. 이들은 5월 3일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압송될 예정이었는데 오성륜이 5월 2일 탈옥하여 김익상만 압송되었다.

6월 30일 나가사키 지방재판소에서 제1회 공판이 벌어졌다. 이 재판에서 김익상은 총독부 폭탄 사건과 황포탄 사건을 모두 인정하였으며, 심리와 증거 조사를 마친 후 9월 18일 나가사키 지방재판소에서 제2회 공판이 벌어졌다. 이시카와(石川) 검사는 김익상의 두 의거가 살상을 목적으로 하였다고 사형을 구형하였으나 다나베(田邊) 변호사는 김익상이 개인적 목적이 아닌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한 동기를 참작하여 동정있는 판결을 내리도록 진술하였다. 9월 25일 나가사키 지방재판소에서 마쓰다(松田) 재판장은 김익상에게 무기징역을 언도하였으나, 이에 불복한 이시카와 검사의 공소로 11월 6일 나가사키 공소원(長崎控訴院)의 공소공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세 차례의 특별사면으로 형기가 줄어들었다. 일본 나가사키(長崎), 시즈오카(靜岡), 구마모토(熊本), 가고시마(鹿兒島) 각 형무소를 옮겨 다니며 1942년에 20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였다. 그러나 출옥 후 일본 고등경찰에게 연행된 뒤 종적이 묘연해졌고, 암살당하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1962년 제43회 삼일절을 기하면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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