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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 9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8-31 조회수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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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의 호국인물



정세운(鄭世雲) 고려 장군 

General Jeong Se-un

(미상 ~ 1362)



 고려 후기의 무장으로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장택현(長澤縣, 현 장흥) 출신이다. 장군은 1352년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를 시작으로 주로 공민왕대에 두드러진 활약을 하였다. 1359년(공민왕 8)과 1361년(공민왕 10) 두 차례에 걸쳐 홍건적이 침략했을 때 고려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내었다. 



  1359년(공민왕 8) 12월, 홍건적의 장수 모거경(毛居敬) 등은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입하여 의주(義州)-인주(麟州)-철주(鐵州) 등을 차례로 점령한 후 신속하게 청천강을 건너 서경(西京)까지 함락하였다. 이에 고려는 장군을 서북면도순찰사(西北面都巡察使)로 삼고 2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대대적인 반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 고려는 1360년(공민왕 9) 1월에는 서경을, 2월에는 정주(靜州)-함종(咸從)-안주(安州)-철주 등지를 차례로 탈환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10월 홍건적의 반성(潘城)·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 등이 중로군(中路軍)의 주력 10여만 명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이용하여 또다시 고려를 침입하였다. 그들은 압록강변의 삭주(朔州)와 이성(泥城) 뿐 아니라 고려의 1차 방어선인 청천강까지 함락시켰다. 이때 장군은 서북면군용체찰사(西北面軍容體察使)가 되어 절령(?嶺, 현 황해도 자비령)의 성책을 지켰다. 그러나 홍건적의 남진을 막아내지 못해 자비령의 요새가 무너지고 8일 만에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현재의 안동인 복주(福州)로 남행하였다. 이때 장군은 추밀(樞密) 겸 응양군상장군(鷹揚軍上將軍)으로서 공민왕을 호종(扈從)하였으며, 복주의 행재소에서 홍건적에 대한 대책을 건의하였다. 즉, 빨리 조서를 내려 민심을 위로하고 각 도에 사자를 보내어 군사를 징발해 적을 칠 것을 주청했던 것이다. 



  이에 왕은 교서를 내려 20만에 달하는 병력이 확보되자 1362년(공민왕 11) 정월 장군을 총병관(摠兵官)으로 삼아 출정 지휘관의 증표인 부월(斧?)을 하사하였다. 장군은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이여경(李餘慶)·김득배(金得培)·안우경(安遇慶)·최영(崔瑩) 등 여러 장수와 함께 군사 20여만 명을 거느리고 개경을 공격하였다. 도솔원(兜率院, 현 파주)에 진을 친 장군은 각 군 장수들에게 개경 동쪽 교외의 천수사(天壽寺) 앞에 군사들을 집결시키고 개경성을 포위하도록 했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악천후를 이용하여 공성작전과 기습공격으로 혼란에 빠진 홍건적을 압록강 밖으로 몰아내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렇듯 장군은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고려의 안위를 보전하는데 일생을 바친 무장이었다. 『고려사』 정세운 열전에 “장군은 성품이 충성스럽고 청렴했으며 나라를 지키기에 밤낮으로 근심하고 이에 대비하였다.”는 사관(史官)의 기록에서 그의 생에 대한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사후에 그 공을 인정받아 첨의정승(僉議政丞)에 추증되었으며, 1361년 공민왕의 호종과 개경 수복의 전공을 기려 일등공신으로 벽상도형(壁上圖形)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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