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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9년 5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09-04-30 조회수 3132
파일첨부 monthlyp_20090429.jpg

김덕령 의병장은 1567년 전라도 광주 출생으로 20세에 형 덕홍(德弘)과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휘하로 들어갔으나 모친상을 당하여 김덕령 장군은 귀향하고 형 덕홍은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관군과 의병이 패퇴를 거듭하자 1593년 전답과 가택을 팔아 무기를 마련하고 사방으로 격문을 보내 의병 5천명을 모집했다. 그 세력이 크게 떨치자 선조로부터 형조좌랑의 직함과 함께 충용장(忠勇將)의 군호를 받았고 1594년 세자로부터 익호장군(翼虎將軍), 선조로부터 다시 초승장군(超乘將軍)의 군호를 받았다.

곽재우와 함께 권율의 막하에서 영남 서부지역의 방어임무를 맡아, 1594년 10월 거제도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1595년 고성에 상륙하는 왜적을 기습 격퇴하는 등 수 차례 왜적을 물리쳤다. 1596년 7월 충청도의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키자 권율의 명을 받아 진군했으나, 난이 이미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했다. 그러나 신장(神將)으로까지 불리던 장군의 명성을 시기하는 무리들에 의해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무고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옥사했다.

1661년(현종 2) 신원되어 관작이 복구되었으며, 1668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1681년(숙종 7) 병조판서, 1788년(정조 12) 의정부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將).
체구는 작지만 날래고 민첩하여 그 용맹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으며, 장군의 생애와 도술을 묘사한 작자. 연대미상의 전기소설《김덕령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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