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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2년 12월의 호국인물
작성자 전산부 등록일 2012-12-04 조회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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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태영 중령은 1946년 2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같은 해 12월 15일 해군사관학교 제1기로 졸업과 동시에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임관 후에는 해군의 선구자적 역할을 위해 창군 초기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해군체제의 정립과 부대의 전투력 증강을 위해 노력하였다.

북한의 공작으로 납북된 미군사고문단장의 전용보트를 되찾기 위해 1949년 8월 16일부터 8월 18일까지 감행한 ‘몽금포작전’시에는 해군첩보부대 팔학지구 파견대장으로 참가하여 북한 함정 4척을 격침 또는 대파시키고, 1척을 나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51년 5월 14일 이태영 중령이 함장으로 부임한 704함은 동해의 원산근해(1951. 7.26 ~ 8. 1) 및 송두진리(1951. 9. 5 ~ 16), 서해의 해주만·옹진반도(1951.10.10 ~ 14), 진남포 근해 작전시(1951.12. 1 ~ 6) 적의 기뢰와 해안포 위협으로 작전수행이 곤란한 연·근해에서 용감하게 돌진하며 포격을 가하여 UN해군들로부터 작은 고추가 맵다는 의미의 ‘고추함’이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용맹의 상징이었다.

1951년 12월 23일 동해경비작전을 수행하라는 해군본부 작명 제430호(28작전 제11호)에 의거, PC-704함은 12월 24일 오전 10시 부산항을 출항, 12월 25일 원산해역에서 PC-703(삼각산)함과 교대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원산해역은 북한군이 아군의 상륙저지를 위해 갈마반도, 호도반도 원산지역에 수많은 해안포를 설치하고, 해안가에는 기뢰를 부설하는 등 매우 위험한 해역이었다. 따라서 아군으로서도 38도선 이북 해역에 대한 해양통제와 지상군 진격을 위해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함장 이태영 중령은 ‘북한군이 원산 서북방 성남리에 기뢰 및 지뢰 등을 은폐해 두고 야간을 이용하여 원산항 부근으로 운반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태영 중령은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적의 기뢰부설 저지를 위해 야간 경비작전을 강행하던 중 12월 26일 새벽 북한 기뢰에 접촉되어 함 침몰과 함께 승조원 57명 전원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차가운 겨울바다에 던져진 이태영 중령 이하 704함 승조원들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다른 전우가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 홀로 남지 않도록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는 진한 전우애를 발휘하였다.

정부는 해양통제권 유지와 적의 기뢰부설 저지를 위해 동해경비작전 수행 중 산화한 이태영 중령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소령에서 중령으로 1계급 특진시키고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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